I'm on your side, when times get rough.

2016.08.02

2016년 08월 2차 반기 보고서

Filed under: KOICA — Peter_KIM @ 08:18

봉사는 무엇인가? 왜 봉사라는 것을 생각하고 일을 저질렀는가?

사람마다 모두 조금씩은 다른 이유에서 봉사를 한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나이, 성별, 종교에 따라서 매우 다를 것이다.

한국은 청년 실업이 넘쳐나는 곳이다. 20대, 30대에도 일을 얻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국가적인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인력을 해외로 보내려는 시도를 하는 정부 관계자와 기관이 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던 30 ~ 50대의 사람들도, 업무의 무거움과 고통 속에서 나름대로의 삶의 방향 전환을 이유로 봉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60대에 퇴직을 하고, 자신의 삶을 남을 위해서 나누어 주려고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누구에게나, 봉사라는 것은 해 볼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많은 위험과 고통을 제대로 알았다면, 봉사를 취업이나, 인생의 전환이라는 짧은 이유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뒷일을 준비할 것이다.

물론, 매우 어린 나이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도전을 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봉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생각하고, 자신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런 능력과 자격은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나는 육군에서 6년 이상을 군인으로 일했다. 그리고, 전역을 한 뒤에,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16년 이상 일을 했다. 오랜 기간의 군대 생활은 기술직으로 일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의 오랜 경력으로 인하여, 또래의 친구들에 비하여,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는 사람의 성실성과 기술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회이다. 오직,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학벌, 출신, 외국어 성적을 우선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조건이 부족한 사람은 항상 차별을 받는다.

이런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혁명을 계획하기도, 기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무엇인가 삶의 방향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농업을 선택했다. 일을 하면서, 1년 정도 농업과 환경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어느 한적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한 삶을 살아볼 참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 기술이 한편으로는 아깝기도 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찾아보고, 연구한 덕분에 기술 실력은 남들보다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대부분 이런 면에서는 인정을 받아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기술을 마지막으로 발휘해보고 싶었다.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우연히, 봉사라는 주제로 인터넷을 헤매다 알게 된, 코이카! 이름도 멋있다. 그리고, 한국의 ODA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 단체에서의 봉사는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104기 봉사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응모했다. 합격 발표가 나기까지의 짧은 기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1차 서류 전형을 지나고, 신체 검사를 받고 나서 최종 합격을 발표하는 날까지는 정말 우울했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한 뒤에, “담낭 용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용종”이라는 낱말도 처음으로 들었다. 가끔 몸의 소화 계통에 문제가 있어서 쓰리고, 체하고, 아팠었는데, 몸에 있는 잘못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위해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비를 들여, 동네에서 좋은 병원에 가서 다시 정밀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이 “이 정도는 일반적인 것이니까, 봉사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어요”라며, 진찰비도 받지 않았다.

얼마 뒤, 최종 합격 발표가 나고, 회사에서 신변을 정리하려는데, 이 회사에서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홀대를 할 때는 언제고,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니까 아쉬운 모양이다. 우선 회사에서는 휴가로 처리하고 “영월”의 국내 교육에 입소했다. 교육을 받으면서, 퇴사를 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인사도 못하고 떠나게 되었지만, 교육을 마치고 출국 전에 찾아보았다.

영월”에서의 국내 교육은 나에게 봉사의 참 뜻을 이해하고, 굳센 마음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게 숭고한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 벅찬 가슴을 가지고, 해외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교육을 마치고, 출국을 기다리며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2년 동안 밖에서 가족과 떨어져 생활을 하고,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모든 경제적인 책임을 지우고 떠나게 되어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삶을 유지했던, 경제력을 스스로 없앴기 때문에, 앞으로 고생할 아내와 아이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몽골에 도착하고, 현지 교육을 받으며, 몽골 말을 조금은 배웠다. 아직도, 몽골 말이 매우 서툴다. 이곳의 말은 매우 빠르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도 어렵고, 내가 말하는 것도 어렵다. 억양은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하다. 어떤 낱말은 한국 말과 비슷한 것도 있다. 아무래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 옛날 고구려, 발해 시절에는 이들도 고구려를 구성하는 사람들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말이 비슷할 수 밖에……

현지 적응 훈련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이 적응 훈련인가? 관광인가?’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매우 충분했다. 언어 교육이 끝나고, 몽골의 유적지와 국립 공원 등으로 돌아다녔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집을 구하고 계약하는 방법, 식재료 구매, 이발, 교통, 금융, 통신 시설 이용 등 봉사 단원이 삶을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실습 교육이 필요했다. 물론, 살아가면서 실수를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Монгол-Солонгосын Политехник Коллеж”(몽골-한국 폴리테크닉 컬리지). 내가 파견된 학교의 이름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곳에 파견될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코이카 몽골 사무소에서 나의 뜻에 관계없이 파견 기관을 바꾸었다.

처음에 이곳을 한국의 전문 대학교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곳의 College 개념은 직업 학교에 더 가깝다. 오전에 보이는 학생은 나이가 15세 ~ 18세 정도로 어리다. 우리 나라의 중-고등 학생 정도로 보인다. 물론 오후에는 우리의 대학생 정도로 나이 많은 학생들이 보인다.

이곳은 한국어 번역, 의상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컴퓨터(네트워크, 그래픽 디자인), 자동차 수리, 용접 등의 학과가 있다.

학과에 비하여, 장비와 학교 시설, 교육 과정은 한국에 비하면 떨어진다. 그러나, 코이카에서 576만 달러의 돈을 투자한 “역량 강화 사업”을 2016년 4월에 완료하여, 더 나은 새로운 시설과 교육 과정이 마련되었다.

자동차 학과는 오산 대학교와 복수 학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간에 ISEP 라는 기관을 사칭(?)한 한국 기업이 관여되어 있다. 이 학교에서 2년 교육을 하고, 한국의 오산대학에서 교육을 1학기를 마치는 과정에 소속된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이를 위하여, 1년에 500달러의 돈을 이 학교의 등록금 외에 별도로, 한국 기업에 내야 한다. 이것을 지금 총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문제로 삼았다. 사실 내가 봐도, 과연 그 기업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기에 그 돈을 학생들에게 받는 것인지 궁금했다. 계약서 살펴보니 대표적으로 해주는 것이 아래와 같았다.

– 몽골 학생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오산 대학교까지 차량 서비스제공

– 오산 대학교 교수님이 몽골의 이 학교에 와서 수업을 진행 (1년에 1주일)

– 오산 대학교의 졸업장.

학생들이 한국에 가면, 거기서 별도의 수업료와 생활비를 각자 해결해야 한다. 이 학교의 전임자들의 실책인 듯하다. 제대로 한국의 기업에게 낚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학교라는 곳이 돈벌이를 주로 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코워커(Co-Worker)는 “대외 협력 관리관”이다. 이 사람의 한국어 실력은 그리 유창하지 못하다. 오산 대학교와 “ISEP”라는 회사에 보낼 문서를 한국어로 작성해주고, 받은 문서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을 자주 했다.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 계속할 것 같다.

컴퓨터 학과의 선생은 모두 10명이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좋은 선생들이다. 교육 내용은 주로 하드웨어, 네트워크, 사무 자동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에 집중되어 있다. 나의 기술인 소프트웨어 분야의 교육은 없다.

처음에 컴퓨터 학과로 갔을 때, 여러 선생이 나에게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전임 단원이 컴퓨터 디자인 분야가 전공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컴퓨터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아예 다른 것이다. 이것을 같은 분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몰상식한 일이다. 코이카의 인력 선발과 배치 과정에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파견 당시, 나에게 맞는 교육 과정도 없었고, 선생들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 내게는 아무런 요청도 없었다. 학생들을 교육하기에 앞서 선생들에게 프로그램 만들기(Programming)가 무엇인지 먼저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C#”이라는 언어를 대상으로, 20강 정도 분량의 이론과 실습 교육을 위한 교재를 약 3달(2015-11 ~ 2016-02)에 걸쳐서 만들어 보았다. 몽골어 수준이 낮아서 영어를 위주로 만들었고, Microsoft 교재와 온라인 강좌를 참조했다.

교육 자료는 PPT 문서와 WORD 문서, 그리고 실습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C”, “C++” 교재는 나중에, “C#” 교육을 완료하면, 만들어볼 계획에 있다. 물론, 영어로 만든다. 많은 프로그램 언어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고, 구태여 짧은 실력으로 번역을 하면, 뜻을 잘못 알려줄 수도 있다.


PowerPoint 강의 자료

교재를 모두 만들고, 이 자료를 컴퓨터 선생들에게 전달했다. 이제 선생들에게 컴퓨터 언어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선생들의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을 설치해 보았다. “Oh! My God!” 교육을 하기에는 컴퓨터가 너무나도 오래되고 사양이 좋지 않았다.

“Visual Studio 2015″를 설치하는 데에만 꼬박 8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리고 설치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에도 10분이상이 걸린다. 컴퓨터의 주요 사양은 ‘RAM: 1GB, CPU: Intel Pentium Duo’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10년전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로서는 교육이 불가능했다. 많은 선생들도 프로그램을 한번 설치하고 놀랐을 것이다.

나의 코워커에게 “역량 강화 사업”의 차원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컴퓨터를 선생들에게 배정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코이카의 사업을 통하여 들어온 새로운 컴퓨터는 지금까지도 선생들에게 배정되지 않았다.

“역량 강화 사업”으로 이 학교의 컴퓨터 교육 내용이 조금은 바뀌었다. 우리 나라의 훌륭한 교수들이 만들어 준 교육 내용을 보면, 한국의 전문 대학교 수준의 과정을 그대로 베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나라의 교육 환경과 요구 수준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은 현 시점의 IT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Visual Studio 2010 Express” 이 프로그램은 지금 Microsoft 사이트에서 구할 수도 없다. 이런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어느 대학의 과정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라는 곳이 교육 보다는 수익을 위하여 일하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너무나도 오래되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할 컴퓨터를 가지고,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바뀐 과정을 잘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나의 교육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매일 계속되는 출근,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내는 날이 계속 되었다. 누구도 말을 거는 사람도 없고, 컴퓨터 선생들은 나름대로 바삐 움직인다. 텅 빈 교무실에 혼자 있는 날도 많았다.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컴퓨터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있어야 했다.

이들은 나에게 컴퓨터 시설의 개선을 요구했다. 오래된 네트워크 선로의 정비와 구형 컴퓨터의 교체 등 돈이 필요한 것들이다. 코워커와 학교 선생 하나가 오래된 네트워크 선로 정비를 위하여,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문의를 했다. 열심히, 건물을 조사하고, 새로운 선로를 설계하고 공사에 필요한 장비와 설비를 조사하고, 시공 규격을 정리한 문서를 만들어 주었다. (RFP).


얼마 뒤에, 코워커가 나에게 왜 공사를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어이가 없었다. 문서를 만들어 주면서 “공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학교의 자금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나의 코워커는 “단원의 의지가 있으면, 코이카는 돈을 지원해 줄 것이다. 선생님께서 이런 요청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하려면 현장 사업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전임 단원이 “Internet CAFE” 수준의 교실을 현장 사업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은 드물게 수업에 사용되지만 거의 대부분 잠겨 있다. 3대의 컴퓨터는 학생들의 인터넷 검색을 위한 용도이다. 왜 그런 식으로 거의 쓸모 없는 공간을 위해 돈을 썼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을 단순히 코이카 단원이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학교에서는 승인했는지 모르겠다. 많은 컴퓨터 선생들이 이 공간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그러니, 정말 현장 사업을 하려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현장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576만 달러라는 많은 물질적 도움을 받았다. 이런 학교에 또 무슨 현장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정말, 이 학교는 한국의 여러 기관에서 물질적 도움을 받고 있다. 대림 대학에서 한국어 강의실(어학실)에 컴퓨터를 설치해 주었다. 그러나, 이 컴퓨터가 모두 교실에서 사라졌다.


대림 대학의 관계자에게 문의하여 설치 당시의 사진을 구할 수 있었다.


컴퓨터 안: RAM, HDD 부품이 없다.


수리를 위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여러 사람에게 알아보았더니, 이 컴퓨터가 모두 창고에 있다고 한다. 왜, 컴퓨터를 창고에 넣었단 것인가? 고장? 단순한 고장이라면, 쉽게 고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워커를 통해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고장이 났다고만 한다. 직접 확인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코워커에게 컴퓨터 5대를 가져 달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도 컴퓨터는 내게 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코워커에게 고쳐 볼 테니 얼른 가져 달라고 했다. 시설 담당 직원이 5대의 컴퓨터를 내 사무실로 가져왔다. 컴퓨터의 뚜껑을 열고 놀랐다. 안에 있어야 할 RAM, HDD 같은 부품이 없어진 상태였다. 누군가 훔쳐간 것이다.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시설 담당 직원과 함께, 창고에 가서 컴퓨터를 세어 보았다. 대림 대학에서 처음에 설치해준 21대의 컴퓨터가 모두 있었다. 모두 주요 부품이 없어진 상태였다.

이 모든 컴퓨터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한국 돈으로 최소 44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견적을 내고, 향후 대책을 위한 준비 사항 등을 문서로 만들었다.


코워커에게 이런 이야기 했더니, “선생님께서 200달러를 주시면, 나머지 돈은 학교에서 낼게요.”라고 한다. 코워커는 이미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견적을 내고, 수리 방법을 위해 문서를 만들어 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결국 돈을 달라는 것인가? 내 생활비의 반을 주어야 한다. 주위의 다른 단원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절대로 지원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돈을 준비하면서, 이들의 반응을 보았다. 내가 다 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대림 대학 관계자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 총장 비서실에 갔다. 거기에서만 국제 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림 대학에 ‘부품을 도난 당한 컴퓨터 복구’ 문제로 전화를 해서 지원을 받기 위해 전화를 하려 한다고 했다. 비서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얼아 뒤에 코워커에게 대림대학에는 연락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 뒤에 총장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이 모이고, 며칠 동안 회의를 했다고 한다. 담당 한국어 선생이 내게 와서 “여러 관계자들이 돈을 모아서 수리 비용을 낼 것예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3달이 지났다. 한국어 선생이 모두 90만 투그릭의 돈을 마련했다고 이야기 했다. 한국어 선생과 함께, 컴퓨터 매장에서 부품의 일부를 구매했다. 앞으로, 다른 부품도 구매하면, 컴퓨터를 복구할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 4월에 새로운 건물이 완성되고, 새로운 장비가 들어왔다. 처음의 계획은 컴퓨터 선생들이 새로운 건물에 들어가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넓은 방에는 회계를 담당하는 직원 3명이 들어갔다. 대신, 컴퓨터 선생은 옛 건물의 작은 방 2개에 나뉘어 배치되었다. 나는 새로운 건물로 갔다. 한국어 선생 3명과 용접, 목공, 컴퓨터 디자인 선생이 함께 이 방을 사용한다. 이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총장과 그를 보좌하는 행정 직원인 듯하다.

학교에서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심부름도 많이 시킨다. 심지어, 선생 자신의 책상을 닦거나, 선생이 사용한 식기를 설거지 하라고 시킨다. 아무래도 학교에서의 서열은 총장, 행정직원, 교사, 학생의 순서인가 보다.

컴퓨터 교육 단원으로 파견되었지만, 이 학교에서 나의 주요 업무는 교육이 아니라, 역량 강화 사업으로 받은 신형 컴퓨터, 프린터의 기능을 설정하고, 수리하는 것이 전부인 듯하다. 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주로, 다른 코이카 단원, 한국 교민들)에서도 거의 같은 도움을 주고 있다.

5월에 EPS-TOPIK 시험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이 시험을 응시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 교육 과정을 열고 운영했다. 한국어 선생에게는 한국 사람인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거의 2달 동안, 매일 3시간씩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여, 한국어 발음을 가르쳐주고, 매일 매일의 교재를 인쇄해 주었다. 결국, 컴퓨터 교육은 없고, 한국어 교육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장비가 왔지만, 여전히 컴퓨터 선생들에게 교육은 못하고 있고, 이제 또 방향을 바꿀 시기가 왔다. 이제는 방학 기간에 동아리 활동을 하려고 여러 가지 절차와 계획서를 준비했다. 물론, 코워커에게도 이야기 했다. 문서를 다 만들고, 코워커와 행정 직원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이것도 물거품이 되었다. 6월부터 8월 말까지 방학 기간 동안, 학생들이 학교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의 기숙사도 빈다고 한다.

왜, 나의 코워커는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고, 문서를 다 만들고 준비를 마치니까 하는 것인가? 문화적인 차이인가? 아니면, 동아리 규칙과 같은 문서가 필요했던 것인가? 점점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이렇게 여름 방학이 시작되려면 1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한 일도 별로 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떤 다른 보람된 일이라도 해야 한다. 때마침, 코디네이터에게서 홀트(HOLT) 아동 복지 센터에 컴퓨터 교육을 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당연히 해야 한다. 나는 봉사자 이니까, 대상은 어린이 7명이다. 수준은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초급이다.

어렵지 않게 컴퓨터를 쉽게 배우도록 안내해 주어야 했다. 우선, Windows 운영 체제를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Office 프로그램의 바닥을 가르쳐주려고 생각했다.

또 다시 교안 작업을 했다. 거의 2달에 걸쳐서 교재를 만들었다. 봉사의 일에 이렇게 문서 작업만 줄기차게 하고 있다.


강의를 하기에 앞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드림 봉사 단원 두 명과 함께 센터에 방문하여, 이틀에 걸쳐 컴퓨터를 수리하고,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 공사를 했다.


네트워크 선로 공사. 랜(LAN) 선을 제작하고, 컴퓨터에 연결하는 과정.


컴퓨터의 내부 먼지 청소.


컴퓨터 ROM-BIOS 조정. 운영 체제 설치와 설정

Windows 강의는 6월의 매주 월요일, 수요일에 했고, 지금 8월에는 Office 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몽골 선생이 통역을 한다. 하는 말이 모두 단순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컴퓨터가 보여주는 미래의 세상은 어떤 것인지, 올바르고 착한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내 교육의 목표이다.

봉사 증, 센터에서는 교실을 비롯한 내부의 벽지를 교체하고 싶다고 했다. 건물의 내부 상태를 보니, 벽지 보다는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었다. 동기 단원(건축 교육 분야)에게 연락하고, 함께 봉사하자고 요청했다. 주위에 있는 여러 단원을 불러 모았다. 심지어, 이곳에 휴가로 온 지방 단원까지도 페인트 칠 작업에 섭외했다. 7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히 벽지를 뜯고, 석고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일주일 넘게, 신나 냄새를 맡고, 옷과 신을 버려가면서 수고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





8월이면 몽골에 온지 1년이 된다. 왜, 한국에서의 좋은 연봉도 포기하고 몽골에 왔는지 이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학교에서 느낀 점이라면, 다시 한번 코이카 봉사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했던 것에 대한 회의이다. 코이카 봉사 단원을 물질적 원조의 수단을 생각하는 현지 사람들의 사상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봉사 단원이 왜 필요하고, 파견된 단원에게 무엇을 요구 할 것인지를 현지 기관이 먼저 만들어야 한다. 코이카는 현지 기관의 요청을 좀더 깊이 심사하고, 단원 파견에 신중해야 한다. 파견되는 단원에게는 2년동안의 기간이 경우에 따라서는 좌절과, 비관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이카 봉사 단원의 파견이 곧 물질적인 원조로 연결된다는 판단에 의하여, 단원을 요청하고 파견된 단원을 방치 수준으로 만드는 이런 기관에는 단원의 파견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상황이 지금과 같이 지속된다면, 이곳에서의 활동 지속은 무의미하다.

기술 직종의 단원들은 학교보다는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활동 기관을 교육기관이 아닌 실무 기관을 선정하는 것이 좋겠다. 복잡한 기술을 교육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어려움이 매우 많이 있다. 물론 단순한 기계 조작이나, 수리의 분야인 경우는 어렵지 않을 수 도 있다. 현지 말로 대화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술 용어나, 전문 이론의 전파는 매우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지인들에게 어렵고 힘든 프로젝트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능한 기술자들을 학교라는 울타리에 가두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8월 지금, 다시 홀트에서 Office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 번에 칠했던 페인트의 냄새가 아직은 가시지 않았다. 이제 9월이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남은 1년을 지난 1년처럼 보내지 않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대비해야 할 시기다.

나에게 참된 봉사라는 것은 나의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와서 하려고 했던 것을 해야 한다. 그저, 그때 그때 주어진 일을 하려고 이곳이 온 것이 아니다. 한국과는 달리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이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Advertisements

2 Comments »

  1. 29일 몽골교환교사로 파견가는 54세 중학교선생입니다. 컴퓨터교육으로 23번 학교 배정받아서 가는데, 선생님의 포스팅을 읽고 매우 걱정이 됩니다. 물론 중고등학생 대상이라 전문적인 교육은 필요없고 맛만 보여주는 교육이 될 듯합니다. 저는 울란바토르에서 약 100일간 생활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놀고 있는 램을 가져갈 생각인데, 사양이 어찌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DDR2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3개월동안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 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구요. 그런데, 님의 글 참 진솔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Comment by cho yongjin — 2016.08.21 @ 00:08 | Reply

  2. 2주전 몽골 생샨드에 파견된 코이카 컴퓨터단원입니다. 저도 기관에서 물질적인 도움 그리고 컴퓨터 업그레이드/ 유지보수말고는 원하는 일이 없어서 온 날부터 컴퓨터수리만 하고 있는데 이럴거면 뭐하러 한국에서부터 뜻을 품고 몽골로 봉사하러 왔나 느끼고있습니다. 어쨌든 힘내시길 바랍니다.

    Comment by parkseungoh — 2016.12.27 @ 13:40 | Reply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TrackBack URI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Create a free website or blog at WordPress.com.

%d bloggers like this: